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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자산 美국채도 매수세 실종…금융시장 유동성 고갈 '이상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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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남준 작성일20-03-16 01:20 조회2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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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시작은 코로나19에 따른 기업들의 실적 악화
융시장은 2008년 펀드런 사태 우려
“현금 확보하자”…단기대출 수요 급증
담보가치 하락과 건전성 강화…은행들 이중고
△뉴욕 주가지수가 1987년 이래 가장 큰 폭락을 경험한 다음날인 지난 13일(현지시간) 한 트레이더가 뉴욕증권거래소에서 개장을 알리는 오프닝벨을 듣고 있다. [사진=AFP제공]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미국 국채 거래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1989년부터 영국 런던에서 자산운용을 하고 있는 마크 홀먼 24에셋 매니지먼트 최고경영자(CEO)은 블룸버그에 “30년물 채권 보유비중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여러 번 거래가 불발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나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국채는 안전자산 중에서도 안전자산으로 꼽힌다. 그러나 마크의 증언처럼 최근 금융시장에서는 미국 국채조차 거래가 어려워지는 ‘이상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 채권이 너무 고평가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무엇보다 현금을 확보하려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유동성이 고갈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시스템의 마비는 자금이 제시간에 필요한 곳에 공급되지 못하는 ‘돈맥경화’를 부른다. 코로나19가 금융위기로 진화할 수 있는 연쇄고리를 점검해봤다.

◇위기 시작은 코로나19에 따른 기업들의 실적 악화

코로나19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직면하면서 전 세계 기업들의 실적 악화는 눈앞의 현실이 됐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국내 이동을 제한하고, 미국은 유럽국가의 이동을 차단했다. 전염병을 막기 위해 각국이 문고리를 걸어 잠그고 대응하고 있다.

물적·인적 이동의 차단은 공급과 수요 모두를 훼손시킨다.

세계은행 등에 따르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30%대에서 2010년대 60% 수준까지 올라갔다. 그만큼 세계가 단절될 경우 GDP가 훼손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2개월 만에 상장기업의 순이익은 1400억엔 넘게 줄어들었다.

주요 경제기관들도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하향조정하고 있다. BOM캐피탈은 한 달 전 2.7%로 전망한 세계 GDP 성장률을 2.0%로 내렸다. 독일 투자은행 베렌버그도 한 달 새 전망치를 2.3%에서 1.8%로, 영국 경제분석기관 캐피털이코노믹스는 3.0%에서 2.0%로 낮췄다.

◇금융시장은 2008년 펀드런 사태 우려

‘블랙스완’(예상치 못한 돌발 악재)의 출현은 초저금리 시대에도 유동성 고갈이라는 이례적인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부양을 위한 중앙은행들의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에 힘입어 주식, 채권, 부동산할 것 없이 자산 가치가 치솟았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 속에서 주식과 고위험 회사채 시장에서부터 자금이 급속도로 빠져나가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레이몬드 제임스의 수석전략가 케빈 기디스는 마켓워치에 “최근 상황은 2008년을 회상시킨다”고 했다. 유동성 악화를 우려한 시장 참가자들이 잇따라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내다 팔면서 자산가치가 폭락하는 ‘펀드런’(Fund run) 사태다.

여기에 코로나19는 예상치 못한 형태로 금융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금융시장 트레이더들이 재택근무, 분산근무에 들어가면서 발생한 돈맥경화다.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는 트레이딩 플로어를 잠정 폐쇄하기로 했다. 골드만삭스 역시 트레이더팀을 ‘화이트’와 ‘블루’로 나눠 물리적인 접촉을 차단하고 뉴욕 본사의 트레이더부를 뉴저지주로 이동했다.

물리적인 변화는 단순히 사용할 수 있는 모니터가 4개에서 1개로 줄어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시장을 파악하는 능력 등 종합적인 부분에서 금융시장의 중개 기능을 떨어뜨리며 시장의 자금흐름이 둔화시키고 있다.

◇“현금 확보하자”…단기대출 수요 늘어

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채권을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기업들은 은행으로 손을 벌리고 있다.

보잉은 지난 11일 직원들에게 “어려운 시기를 맞아 현금을 확보하는 것이 회사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며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달 은행에서 대출받기로 한 138억달러 중 남은 금액을 전부 인출할 것이며 당분간 신규 고용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통보했다.

글로벌 호텔 체인인 힐튼월드와이즈홀딩스,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씨월드 엔터테인먼트 역시 대출 규모를 확대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거나 경영실적이 악화할 경우, 은행들이 대출을 재검토하거나 금리를 올리기 전에 기업들이 자금을 끌어내려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담보가치 하락과 건전성 강화…은행들 이중고

기업들의 자금 수요는 늘어나고 있는데 반해 은행들은 담보가치 하락과 건전성 기준 강화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이탈리아 투자은행 메디오방카는 지난 2월 17일 이후 주가가 반토막났다.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이탈리아 국채 가격이 폭락하면서다. 에너지 관련 기업 대출이 높은 네덜란드 은행 ABN암로와 ING 역시 같은 기간 47.9%, 47.8% 주가가 폭락했다.

여기에 은행의 건전성 강화를 목적으로 새로 도입된 회계기준인 ‘현행기대신용손실’(CECL)은 은행에게 ‘장래 발생할 수 있는 손실’까지 고려해 충당금을 쌓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으로서는 부실채권 보유비중을 축소할 유인이 커진다.

독일은행협회는 새로운 회계 기준이 코로나19로 치명타를 입은 기업들의 ‘우산 뺏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다슬 (yamy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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