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고 그리고 '반복 또 반복'...복제할 수 없는 노동집약적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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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외라 작성일22-04-03 19:57 조회6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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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상남 ‘감각의 요새’전선명하고 정교한 점·선·도형‘의미없는 생각의 형태’ 나타내관람객에게 해석 공간 열어둬이상남 작가가 ‘감각의 요새’(작품 번호 L 120) 앞에서 작업 과정과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수행에 가까운 노동 집약으로 이루어낸 직선과 원의 이미지는 삶과 죽음을 상징한다.김종목 기자“의미 없는 생각의 형태라고 보면 딱 맞아요.” ‘감각의 요새’전에서 만난 이상남은 직선이나 곡선, 점 같은 기하학적 재현 내용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 규정은 관람객에게 해석의 공간을 활짝 열어놓는다. 사각형과 삼각형, 원의 조합은 사람으로, 건물로, 종교 상징물로 보인다.디지털 프린트로 찍어낸 듯한 선명하고 정교한 이미지는 노동 집약 작업의 결과물이다. 그는 작품마다 칠하고, 갈아내기를 50~100회 반복한다. 발터 베냐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예술작품의 기술복제 가능성 시대에서 위축되는 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라고 했다. 이상남은 작업 때 이런 아우라를 담으려 한다고 했다. 노동 집약의 결과물은 복제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이다.이상남은 이 노동을 두고 이런 비유를 들었다. “한 무용수가 무대 위 의자에 한 사람을 앉혀 두고 주위를 돈다고 생각해보세요. 한 바퀴, 두 바퀴 돌면 관객들은 그 행위에서 의미를 뽑아내려 하겠죠. 언어를 찾으려고도 하고요. 30바퀴, 40바퀴 돌잖아요. 관객이 무용수와 하나가 되어버려요. 의미가 무화되는 상태에 이르는 거죠. 제가 집약적으로 무엇인가 해나가는 일이 그렇다고 생각하면 돼요. 의미를 찾을 수 있고요. 의미를 안 찾아도 상관없다는 거죠.”이상남은 결과물 같은 목적 의식을 갖고 작업하지 않는다고 했다. “마음에 안 들면 지우고 다시 해요. 끊임없이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거죠. 보는 사람들이 결과를 가져가는 거죠. 관람객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만드는 겁니다.”‘그림 가장자리의 날카로움’에 관한 이야기도 꺼냈다. “관람객이 그림 앞에 서면, 3~4초밖에 안 봐요. 시선을 끌어들이려면 내용도 중요하지만 매혹적인 형식이나 독특한 아이디어도 필요하죠.” 이상남은 작품이 관람객의 시선을 할퀴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1981년 미국 뉴욕으로 가서 처음 본 영화가 루이스 부뉴엘의 아방가르드 작품 <안달루시아의 개>이다. 안구를 면도칼로 긋는 장면이 나온다. 이상남은 이 영화를 차용해 새롭고 낯선 이미지로 찌릿한 감각을 끌어내려고 시도한다. 그림 가장자리 곡선을 명료하고 투명하며 날카롭게 처리한 건 “감각을 건드리고, 보는 사람의 눈을 할퀴려는 것”이라고 했다. 전시와 연작 제목인 ‘감각의 요새’는 이런 작가 말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노동 집약으로 겹겹이 쌓아 올린 세 겹, 네 겹의 이미지 중첩이 요새인 것이다.작가 의도와 작품 의미를 지워버릴 순 없다. 인공의 형상엔 ‘삶과 죽음’이 담겼다. 이상남의 오랜 화두다. “직선은 죽음, 원은 삶이죠. 소멸과 생성이기도 하고요. 몇 초를 더 투자하면 반짝이며 사라지고 허물어지는 이미지에서 새로운 게 보일 수 있죠.”코로나19로 삶과 죽음, 소멸과 생성에 관한 생각은 깊어졌다. “초창기 때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요. 살벌했죠.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요. ‘사람의 길’이란 게 사라졌어요. 전쟁이 벌어진 거 같았죠. 침묵의 거리에서 공포와 세기말을 느꼈어요. 6개월은 멍해지더라고요.”타개책은 작업밖에 없었다. “매일 하던 짓, 제일 잘할 수 있는 걸 하자고 했죠. 극한 상황으로 자신을 밀어붙이려고 했어요.” 서울 삼청동 PKM 갤러리에서 4월16일까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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