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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권(2008) | [18권 2호]이인화, 沔川卜智謙전설의 민속지리학적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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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6-30 01:51 조회2,3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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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약 :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에 대한 기록 및 연구논문이 거의 없는 실정에서 민속지리학적인 방법론을 통해 면천지역에 전해오는 복지겸 관련 전설 5편을 재해석해 사료적인 의문점과 기록으로 파악되지 않는 부분을 재검토하였다. 면천은 중국의 산동반도와 내왕이 용이한 곳으로 통일신라, 후삼국시대 주교통로였고, 도지정 기념물인 은행나무 2그루가 위치하는 면천읍성 일대는 풍수지리적 吉地로 陽􆪠地로 주목되는 곳이고, 복지겸, 박술희의 관향으로 서북향이 높은 가야산지가 둘러져 있으면서도 남동쪽인 아산만과 서해안이 열려 있어 군사·교통·풍수지리적 요지이다. 따라서 면천은 궁예의 摩震으로부터 고려 개국까지 후고구려 땅이었고 면천이 관향인 복지겸이 豪長으로써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사료되며, 면천복씨의 失勢는 2대 혜종의 지지세력이었던 海上勢力의 실세와 軌를 같이 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卜智謙은 구백십팔년 9월 이후 갑작스럽게 기관지 喘息으로 인해 政界에서 은퇴하고 면천면 성상리 객사터 주변으로 낙향하였을 것으로 사료되며 순성면 성북리 위잣디 일대는 생가지로 통일신라 말 亂世期에 복지겸의 조상이 十乘地와 다름없고 조망권이 뛰어나면서도 군사적으로 요충지인 숨어산(몽산)아래 정착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그의 조상은 산동반도의 蒙山과 관계가 깊은 난민으로 어렵게 살아 소년시절 아미산에서 나무를 하였고 그 마을 처자와 결혼을 하였으며, 궁예의 기병대장, 구백십팔년 왕건으로부터 개국 1등 공신과「卜」姓과「智謙」이란 성명을 하사받았다. 또한 면천은 백제시대 추군, 통일신라시대 추성군으로「몽산성」으로 개칭된 것은 복지겸 등 신라말 난세와 관련되어「숨어산성」을 뜻하게 되었다고 보여진다.
주요어 : 복지겸, 면천, 전설, 풍수지리, 천식, 낙향지, 생가지, 사생애, 지장, 숨어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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